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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20170823> 비오는 날 생각나는 소설-풍금이 있던 자리

비오는 날 생각나는 소설

 


     고등학생 때 마지막으로 푼 소설 문제는 단번에 입시가 끝나고 읽고 싶은 책 순위 첫 번째를 바꿔버렸다. 소설의 일부였기에 너무나 궁금했고 밋밋한 일상 속 자극적인 이야기이기도 했다. 매일 풀이한 대부분의 소설이 기존 작품의 반복이었기에 새로운 소설은 내 일상의 새로운 자극이었다.


     여름도 아니고 겨울에 가까운 가을, 비가 온 것도 아닌데 창밖엔 소나기가 그친 회녹색 풍경이 그려졌다. 그 풍경을 보기 위해 비오는 날마다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지만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비오는 풍경이라 하면 여름인데도 차갑게 쏟아지는 빗줄기와 그것을 덮은 회색 천장뿐이었다. 그날만큼은 학교 앞 테니스장에 불이 켜지며 공이 튀는 소리가 탕탕 났다. 그런 내가 3년 만에 처음 느낀 비오는 여름, 비가 그친 정원의 모습이었다.

     

     비오는 날도 아니었고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아름다운 사건도 아니었다. 다만 편지로 말하는 그녀의 생각일 뿐이었다.  과거 아버지의 불륜, 그리고 그 자신의 불륜


그 여자와의 약속으로 과거와 현재가 이어졌다. 어린 그녀가 엄마와 그 여자를 바라보며 느낀 감정은 느껴본 적 없지만 주변이 촉촉해지는 기분이었다. 마치 차가운 소나기가 내렸지만 여름의 온기로 주변이 따뜻한 물방울로 가득 찬 것 같이.

     

     나는 꼭 읽고 싶다고 생각하고 6개월 만에 그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 해 처음으로 읽은 소설이었다. 그 때는 몰랐지만 가뭄으로 비가 오지 않았던 때, 어딘가 소나기가 지나간 것만 같았다. 결코 아름다운 소재도 아니고 어쩌면 이 소설을 통해 잘못된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또한 나는 신경숙이라는 작가를 선호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신경숙의 시적서술은 시를 즐기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도 서정적으로 바뀌게 한다. 그래서 (모순적이게도) 계속 읽게 되는 것 같다. 그 분의 표절 논란에 어차피 자주 읽지 않는 책이라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비오고 난 뒤 회색이 섞인 풍경을 잊지 못하겠더라. 비오는 풍경이 묘사된 적은 없지만 늘 읽는 순간에 창밖엔 굵은 빗줄기가 내리고 있으며 책을 덮는 순간엔 비가 그치고 난 수채화가 있었다.

     

     우기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소나기가 내리는 풍경에 자꾸만 생각이 난다


 2000년 이후 최신 판본도 있지만 도서관에서 찾아보니 해당 판본이 내용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사진출처: YES24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