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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20170606> 두려움은 익숙한 것들의 결핍

-신철규 시인의 심장보다 높이를 읽고-


우리 주변의 것들은 언제나 익숙하다. 내가 태어나 의식을 갖게 된 순간부터 당연히 내 주변에 있었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두려움을 느끼고 위기의식을 느낀다.

 우리 삶에서 천둥번개가 치는 날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러나 우리는 천둥번개가 언제나 두렵다. 그렇게 정전이 된 날도 수없이 많지만 당연한 전기에 기대어 살아왔기에, 당연한 빛에 기대어 살아왔기에 두렵다. 더욱이 욕실 안에서 정전이 된 순간엔 밖에 나갈 수도 없기 때문에 두려움은 배가 된다.

 우리의 신체는 의식하지 않아도 알아서 순환하고 작용한다. 그것 또한 태어나던 순간, 어쩌면 그 이전부터 당연히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이 멈추는 순간, 우리의 삶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익숙한 것이 사라지는 것은 우리의 몸이 멈추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바깥에 아무도 없어요?

내 목소리가 텅 빈 욕실을 울리면서 오래 떠다니다가 멈춘다

 

우리는 언제나 확인하고 싶다. 하지만 그 누구도 모른다. 사실 우리도 확인하는 것이 두렵긴 하다. 그리고 스스로 판단을 내린다. 나의 판단과 상관없이 두려움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발가락 끝에 도달한 피는 돌아올 때 무슨 생각을 할까

해안선 같은 발가락들을 바라본다

 

 피는 의지와 상관없이 심장의 펌프질에 의해 온몸 구석구석을 다녀온다. 의지로 발가락으로부터 회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로 의지와 상관없이 그 일부가 계속해서 지나간다. 해안선이 계속해서 깎여나가듯이 우리의 삶도 씻겨나간다.

사람은 죽음이 임박하면 자신의 죽음을 인지한다고 한다. 누군가는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아닌 죽어가는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아무리 우리가 죽음에 대해 말한다 할지라도 그 누구도 죽음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은 우리 곁에 항상 도사리고 있는 것들 중 가장 두려운 것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은 심장의 펌프질이 멎으면 죽음에 이르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 몸이 살아가는 가장 기본적인 메커니즘인 혈액순환이 사실 신기하긴 하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알아서 저 먼 곳까지 끊임없이 피를 주고 받는 일이 믿기지 않을 때도 많다. 그런 어떤 자동화된 시스템이 예상치 못한 순간 멈추게 되면 우리의 삶 또한 멈추게 된다. 그것은 시적화자가 겪는 목욕 중 정전의 상황과 일치한다고 볼 수도 있다. 정전 또한 당연히 흐르던 전기가 예상치 못하게 끊기며 찾아오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구겨버린 꿈

누군가가 짓밟아버리는 꿈

 

이러한 흐름에서 이 부분은 다소 당황스럽다. 정전된 것으로 이렇게까지 생각할게 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정전과 죽음을 일치시켜 보자. 우리 꿈은 우리 삶의 흐름 중에서도 정점에 있는 것이다. 죽음은 우리 삶의 흐름이 끝이 나는 곳이다. 그 정점에 도달하지 못한 채 우리의 삶이 끊긴다 생각하면 이 대목은 우리가 누군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이유이자,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화자는 이러한 사실에 직면해 눈물을 흘리기까지 하였고 이내 정전은 끝이 났다. 이 정전으로 화자와 우리가 죽음을 경험했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살아가며 끊임없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당장 내일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아주 가끔, 살다가 한 번쯤은 죽을 뻔한 상황과 마주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덩이가 된 심장이 온몸을 내리누르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가 당연히 살아가듯 모든 인간에게 죽음 또한 당연히 닥쳐올 일이다. 그 또한 인간의 삶을 일반화해보면 일상적인 일인데도 그 순간을 가능한 멀리하고 싶다. 나의 죽음도 무섭고 내 주변에 닥칠 누군가의 죽음도 두렵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그 두려운 순간에 대해 다시 한 번 두려워하다가도 무뎌진 감각에 아무렇지 않게 다시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의 삶이다.

 








(시 원문)

심장보다 높이

신철규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는데 전기가 나갔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녹슨 슬픔들이 떠오른다

어두운 복도를 겁에 질린 아이가 뛰어간다

 

바깥에 아무도 없어요?

내 목소리가 텅 빈 욕실을 울리면서 오래 떠다니다가 멈춘다

 

심장은 자신보다 높은 곳에 피를 보내기 위해 쉬지 않고 뛴다

중력은 피를 끌어내리고

심장은 중력보다 강한 힘으로 피를 곳곳에 흘려보낸다

 

발가락 끝에 도달한 피는 돌아올 때 무슨 생각을 할까

해안선 같은 발가락들을 바라본다

 

우리가 죽을 때 심장과 영혼은 동시에 멈출까

뇌는 피를 달라고 아우성칠 테고

산소가 부족해진 폐는 조금씩 가라앉고

피가 몸을 돌던 중에 심장이 멈추면 더이상 추진력을 잃은 피는 머뭇거리고

 

나아갈 수도 돌아갈 수도 없고

할 말을 찾지 못해 바싹 탄 입술처럼

그때 내 영혼은 내 몸 어딘가에 멈춰있을까

 

물이 심장보다 높이 차오를 때 불안해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깊은 물속으로 걸어 들어갈 때

무의식중에 손을 머리 위로 추켜 올린다

 

무너질 수 없는 것들이 무너지고 가라앉으면 안 되는 것들이 가라앉았다

물속의 얼굴들은 반죽처럼 흘러내렸다

덜 지운 낙서처럼 흐릿하고 지저분했다

 

누군가가 구겨버린 꿈

누군가가 짓밟아버리는 꿈

 

어떤 기억은 심장에 새겨지기도 한다

심장이 뛸 때마다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번져간다

 

나는 무섭고 외로워서 물속에서 울었다

무섭기 때문에 외로웠고

외로웠기 때문에 무서웠다

고양이가 앞발로 욕실 문을 긁고 있다

 

다시 전기가 들어오고 불이 켜진다

물방울을 매달고 있는 흐린 천장이 눈에 들어오고

 

어둠과 빛 사이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서로를 조금씩 잃어가면서

서로를 조금씩 빼앗으면서

 

납덩이가 된 심장이 온몸을 내리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