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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20160703> 눈과 눈이 만나는 그 순간을 - 한강,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부당한 대우에 도전하는 것. 누구나 옳다고 생각하나 선뜻 나서긴 힘든 일이다. 나도 억울한 상황에서 꼭 내 목소리를 내겠다고 다짐하였으나 실제로 나서본 적은 별로 없다.

임선배는 자신이 일하던 언론사의 기사 삭제 사건에 대항하는 시위로, 경주언니는 여성 직원의 결혼에 퇴직을 요구하는 회사에 출근투쟁을 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두 사람이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부당한 대우에 도전하였다. 임선배의 경우 가족의 생계를 희생하였지만 결국 뜻을 함께하는 동료들과 새로운 언론사를 세우면서 부당함을 꺾어냈다. 그러나 경주언니는 부당함을 알지만 자신에게 피해가 올까 눈치 보는 동료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 채 이직하였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이런 부당한 대우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대중의 무관심과 상업성이 없으며 기득권에 도전한다는 이유로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세상과 싸워나가고 있다. 쌍용자동차 해고 직원들, KTX 여승무원들, MBC 직원들,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 최근 몇 년 사이 세상에 드러난 임선배와 경주언니들이다. 그러나 누구도 이들을 위한 보도나 옹호하는 발언을 하지 않는다.

 

     이제 손을 꺼내 눈을 향해 내밀려는가, 나는 생각했다. 죽은 사람의 손은 얼마나 차가울까. 거기 닿은 눈은 얼마나 오래 머물러 있을까. 눈 한 송이가 녹지 않는 동안 우리가 얼마나 더 이야기할 수 있었는가.

     나는 과연 말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못하는 게 당연하다.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불의에도 그러다 말겠지하는 생각으로, 나랑 상관없으니까 하고 모른 체한다. 그런 우리가 세상의 힘에 맞서는 것은 당연히 큰 용기가 필요하니까. 나만해도 용기가 부족하다. 인터넷으로 기사를 찾아보다가 몇 백자 되지 않는 댓글을 다는 용기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혼자일 때보다 함께일 때 훨씬 강력해진다. 항상 댓글의 개수보다 공감수가 더 많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외면인 것 같다. 경주언니는 세상은 물론이거니와 함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동료들에게 까지 외면당했다. 그러나 임선배는 함께 할 동료들이 있었기에 원하는 바를 이뤄낼 수 있었다. 윤리적 선택을 하려는 이들에게도 용기가 필요했고 힘이 필요했다. 그러나 외면으로 그들의 도움을 무시를 하면서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을 깨닫는 순간에야 고통의 바깥에서 죄책감을 느낀다.


     우리는 점점 자기 사는데 바빠 고통의 바깥에 있다는 걸 인식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그전에 고통 속에 있는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제 밝아지려는가, 나는 생각했다. 그는 아직 점퍼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지 않은 채, 마치 검푸른 허공에 멈춰 서려는 듯 느리게 떨어져 내리는 눈송이들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말없이 우리의 눈과 눈이 만났다. 평화를.

 

     누구나 나는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을 돕고 싶고 그들이 너무 안타까워라는 생각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생각이 아니다. 마음, 생각은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생각과 마음의 상태에서 한 걸을 더 나아가 그들의 보도를 요구하고 응원하고 후원하는 등의 방법으로 그들과 함께 해야 한다. 그렇게 우리의 관심이 구체화 될 때 그들의 고통이 고통에서 끝나지 않고 해소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눈과 눈이 만나 세상이 밝아지는 때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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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구글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