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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록/조금은 긴 이야기

여행, 사진, 고민






여행과 사진

 

 내게 모든 사진은 삶의 모든 순간의 흔적이다. 이불에 감싸여 목도 가누지 못하던 그때부터, 어제 만난 친구와의 그때까지. 사진 속엔 그때의 내가 있다.

 

 

 나는 나의 모습을 보며 그 순간에 있는 게 아니어서 사진은 저 앞에서 나를 기록한다. 그래서 가끔 내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서 내가 보고 있는 방향으로 사진을 찍으면 그저 그런 사진이 나온다. 그보다 아무것도 아닌 사진이 남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 곳을 배경으로 내가 나오는 사진이 그때의 기억을 대신한다.

 

 

 가장 즐겁게 사진을 찍는 순간은 여행 중이다. 솔직히 여행 중 사진을 찍는 일은 재미있기도 하고 안 찍기엔 아쉬워서 의무적으로 하게 된다. 여행을 다녀와 사진을 보며 그 기억에 행복해하기도 하고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그때의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귀찮은 일이기도 하다. 원하는 사진이 안 나와서 계속해서 흘려보내는 소중한 시간. 사진을 찍으면서는 그 사실을 잘 알아채지 못한다. 카메라 렌즈 또는 카메라 액정만 바라보며 흘러가는 그 시간, 나는 수많은 것을 놓치고 만다. 여행에서 돌아와 사진을 보다보면 그 순간이 기억나긴 하지만 그 넓은 풍경이 기억나질 않는다.

 지난 여행에선 사진 상으론 정말 예쁜 목장이 있어 찾아갔다. SNS상에서 유명한 사진 스팟이었고 친구가 정말 가고 싶어하던 곳이었다. 포실포실한 양도 많고 사람들이 양에게 건초를 먹이며 뛰노는 풍경을 상상했다. 사진 속에서 그랬으니까. 막상 그 목장에 가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양은 5마리도 채 보이지 않았고 황량한 목장엔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은 후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입장료가 따로 있거나 그런 체험형 목장이 아니었기에 어쩌면 당연한 풍경이었다. 사진만 보고 구체적인 계획을 하지 않은 나의 탓이 크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여행지에서 사진을 포기할 수 없다. 대신 사진에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다시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나도 가끔은 폴라로이드로 사진을 찍는다. 선명하지도 않고 사진 크기도 작다. 확대해서 보려면 아마 돋보기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필름도 그때그때 사야한다. 혹시 잘못 찍으면 되돌릴 수 없다. 그래도 보는 재미가 있다. 비슷하게 가끔은 50장 정도 사진을 골라 인화하던 적도 있다. 장당 비용이 들기 때문에 하나하나 신중하게 고른다. 그런 사진을 넘겨보면 기분이 이상하다. 엄마의 오래된 앨범에 있는 오래된 사진 같기도 하다. 어릴 때 찍은 사진 중 몇몇은 엄마의 사진처럼 이미 색이 바래기도 했다. 한편 아이폰 저장공간을 가득 채운 사진을 보며 정리하지도 못한 채 고민만 깊어갈 뿐이다. 



카메라가 없을 때 여행은 훨씬 생생해진다라는 글을 다시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