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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듣고/21세기

<20171005> 편지-편지와 관련된 노래

 




      가장 쓰기 어려운 글이라 하면 나는 고민하지 않고 편지를 말한다. 읽는 대상이 명확하지만 얼굴을 보지 않고 말해야 하고, 대답을 바로 듣지 못한 채 혼자 독백해야 한다. 혼자 밥을 먹는데 건너편 사람과 눈이 마주치는 느낌이다. 그래도 받았을 때의 기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편지를 써낸다.


      중학교 때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 게 유행했었는데 나는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매일 만나는 친구에게 장문의 편지를 쓰고 예쁜 모양으로 접어 집에 가서 읽어라며 직접 전달하는데 못하겠더라. 친구에게 쓰는 편지는 의무가 아니니까 괜찮은데 롤링페이퍼나, 선생님한테 쓰는 편지는 빠질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갔는데 무슨 편지가 그리 자주 오가는 지, 편지지 없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것도 묶음 편지지로, 아님 예쁜 편지지를 쌓아놓고 쓰는 친구들도 있었다. 다행히 사람이 적응했는지 나도 곧 편지지를 사고 편지를 쓰게 되었다. 친한 친구가 뜬금없이 주는 편지에 답장을 해야 했고 생일마다 서로 롤링페이퍼를 주고받았다.


     때로는 편지에 감동받고 또 언제는 편지를 받긴 했지만 열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쓴 편지로 만난 적 없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가하면 멀리 떨어져 지내는 친구에게 안부를 전했다. 그럼에도 편지는 항상 어렵고 힘들다.


     편지를 쓰는 일과는 별개로 나는 편지라는 단어가 들어간 노래를 좋아했는데, 그 중엔 빠르고 신나는 곡이 하나도 없었다. 편지라는 제목엔 당연히 그런 게 어울리겠지만 사실 나는 슬프고 우울한 노래를 선호하지 않기에 조금 놀랐다. (내 플레이 리스트엔 느린 발라드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도)

기본적으로 편지가 들어가는 노래의 가사는 편지로 하고 싶은 말로 구성된다. 그리고 대부분은 부치지 못한 편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마도 편지는 우편으로 보내거나 상대에게 직접 전달해야 상대가 읽을 수 있는데 전달하기 쉽지 않은 모양이다. 내 편지 상자에도 주지 못한 편지가 많은데 지키지 못한 약속이나 무기한의 만남이 남아있을 뿐이다. 쓰면서도 알고 있었고 그 미안한 마음에 쓴 편지가 대부분이다. 그 약속은 지금도 지키지 못한 채 계속되고 있으니 다시 만난다 한들 편지를 줄 수 없는데. 부치지 못한 편지엔 부칠 수 없는 편지가 포함된 것이다. 이미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쓴 편지를 전달할 수 있다면 만나서 얘기하지 않았을까?

 

     요즘에 가장 많이 듣는 편지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편지인데, 가장 최근에 알았고 가장 오랜만에 들었다. 친구가 내 MP3를 빌려 듣고 넣어준 노래이다. 궁금한데 아무렇지 않게 흐르는 느낌이 좋아서 음원도 사서 다운로드했었는데 지금은 희미한 복사본만이 남아있다. 파일을 정리하면서 그렇게 되었다. 때문에 오랫동안 듣지 못하다가 최근에 우연히 다시 듣게 되었다.


     그리고 이 노래는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지금은 가을방학으로 활동하는 계피가 부른 버전, 계피의 탈퇴 이후 다른 멤버들이 부른 버전이 있다. 다른 노래는 모르겠는데 이 노래만큼은 계피의 목소리로 듣고 싶더라.


     대부분의 노래와 마찬가지로 편지의 대상은 사랑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브로콜리 너마저의 편지는 모든 그리운 사람에게 통한다. 나의 경우 오해로 사이가 틀어졌거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주 만나지 않은 친구 몇몇이 떠오른다. 친구 말고도 그냥 많은 생각이 난다. 과거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싶은데 계속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 조용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 듣는다.

 


     가장 오래 들은 편지는 아마 박정현 씨의 편지할게요일 것이다. 중학생 때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박정현 씨의 노래를 좋아했다. 그 중에서 최고로 뽑는 노래가 편지할게요인데 이 편지는 다른 편지와 달리 내일만난다는 기약이 있다. 하지만 나는 아주 오랜 시간 만나지 못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잠깐 못 만나는 그리움보단 긴 시간 후에 만날 수 있을까?와 같은 기분이다. 박정현 씨의 you mean everything to me는 지금의 마음을 말로 다 담아낼 수 없는 기쁨이라면 꿈에는 다른 편지와 비슷한 느낌이다. 편지할게요는 꿈에에 가까운 감정같다. 다만 덜 슬픈 그리움과 같다.


     ‘편지할게요는 지금은 자주 듣지 않는다. 앞에서 설명한 감정은 절대 무겁거나 부담스럽지 않다. 과거엔 그래서 자주 들었다. 언제 들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무겁지 않고 슬픈 게 아니란 걸 잘 알지만 무기한 이별이 있을 것 같은 기분에 듣지 않게 되었다. 슬픈 일에 슬퍼하되 일부러 슬프기 싫은 내 마음이 드러나는 것 같다. 그래도 하루에 몇 번씩 듣던 노래인데 신기한 일이다.

     

     마지막 편지는 김광진 씨의 편지이다. 편지의 정석. 단 미련은 없을 거라는 편지. 하오체라서 기분이 나쁘지도 않고 하고 싶은 말도 명확하다. 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가장 슬프다. 특히 나는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에서 얼마나 많은 오해를 했는지. 노래가 시작하는 순간 그 한 마디만 들리고 이후 가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악기 소리만 들리고 괜히 숨이 찬다. 내가 듣는 모든 상황에 다른 이유로 끝이구나라고 느끼곤 했다. 끝을 보는 순간, 꼭 이 노래를 찾아 듣고 숨을 들이쉰다. 그래서 평범한 날엔 절대 듣지 않는다.

 

     편지를 쓰는 것은 정말 어렵지만 받았을 때 가장 기분이 좋은 글이 또 편지라고 생각한다. 나를 위해 직접 글을 써냈다는 사실에 기쁘기도 하지만, 상대의 말을 예쁜 글로 보관할 수 있어서 더욱 기쁘다. 눈을 마주치고 하기 어려운 말도 편지로는 할 수 있다. 때로는 듣고 싶지 않은 말에 편지를 열어보지 않아도 좋다. 또한 말로 전할 때보다 효과가 커지기도 한다. 문자 메시지보다는 이메일이, 이메일보다는 손 편지가. 우편으로 받는 편지는 더더욱 기쁘다. 그 거리가 멀수록 그 감정이 깊어진다.


     요즘엔 아이유의 밤편지가 뜨던데, 밤편지는 위의 세 편지보단 받고 싶은 편지에 가깝다. 편지할게요의 편지와 비슷할 수도 있지만, 밤편지만큼은 받았을 때 후회가 된다거나 슬프거나 하지 않을 것 같다. 늦은 밤 전화로 속삭이는 것만 같은 아이유의 목소리 때문인지 여름밤 창문 아래 앉아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