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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록/조금은 긴 이야기

<20171120> 눈에 대한 이야기- 첫 눈




 

 

1. 봄눈 온 날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것 같다. 어김없이 우리 초등학생들은 일기를 써 제출했다. 그해엔 4월까지도 눈이 왔다. 우리 지역은 춥긴 해도 눈은 좀처럼 오지 않는 곳인데도 말이다.

     그날따라 선생님은 한 친구의 일기를 읽어주고 싶다고 했다. 그 친구도 동의를 했다. 솔직히 의외의 인물이라 뭔가, 했다. 선생님은 00이의 일기 제목이 너무 멋있다고 했다. ‘봄 눈 온 날’. 그냥 평범한 초등학생의 일기가 시작되었고 뭔가 봄 눈 얘기가 나올 때가 되면 다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래도 계속 들었는데, 끝까지 봄 눈 얘기는 없었다. 일기를 다 읽은 선생님은 너무 좋은 제목이라 기대했는데 봄눈 얘기는 왜 없는지 궁금하다고 하셨다. 그 친구는 그저 웃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제목 짓기는 참 어렵다. 문장을 이어 쓰는 것은 쉬워도 그 내용을 전부 담으면서도 멋진 제목을 짓는 게 쉬울 리 없다. 그 친구의 잊을 수 없는 제목. 반 친구들 앞에 읽어도 상관없어 할 만큼 별 얘기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수많은 글을 쓰면서 아직도 그렇게 멋진 제목은 아직까지도 지어본 적이 없다.

 

 

2. 첫눈?

 

     나는 낭만도 없고 감성도 없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이 내게 그렇게 말한다. 인공 눈물 그 자체인 신파 영화를 보고 한 번도 운 적이 없다. 그래서 그런영화를 볼 때마다 눈물도 안 흘리냐는 말에 슬프다고 눈물을 흘리는 것도 아니고 영화보고 꼭 울어야 하는 법칙을 없다는 둥 여러 가지 변명 아닌 변명을 해야만 한다.

     흔히 사계절을 봄-여름-가을-겨울이라 하지만 나 혼자 생각할 때엔 겨울--여름-가을-겨울이라고 믿는다. 물론 계절은 순환되며 겨울의 흐름이 끊기지 않고 봄까지 이어지지만 1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내겐 11월의 첫눈보단 1월 또는 2월의 첫눈이 더 의미 있다. 1~2월은 전보다 더 건조해서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눈이 거의 오지 않는다. 도로와 인도 사이엔 턱을 완만하게 메워주는 얼음이 얼어있고 겨울하면 떠오르는 하얀 이미지가 아닌 시멘트 건물과 아스팔트로 가득한 회색의 이미지만 남아있다. 눈이 오면 염화칼슘 때문에, 자동차 때문에 곧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겠지만 잠시나마 눈앞엔 하얀 겨울이 나타난다. 길고 긴 북부지방의 겨울이 질리는 1,2월은 그렇다. 3,4월이 되면 애매한 계절이 되는데 분명 몸은 겨울이라 말해도 마음은 겨울이라고 외칠 것이다. 그래도 봄이라는 단어의 화사하고 따사로운 느낌에 1,2월 겨울보다는 반갑다. 할 일도 별로 없고 외출도 두려운 첫 두 달은 그렇게 길다. 그래서 오늘, 또는 며칠 전에 공식적으로 첫눈이 왔지만 뭐 크게 상관없다.

 

3. 강릉의 눈

 

     말로만 들었지 영동지방의 폭설은 어마무시하다. 2월 영동지방엔 핀란드처럼 눈이 쌓여있다. 친구 말로는 집밖에 나가기 위해 문을 열고 나가는 길대로 눈을 파야 한단다. 그래서 터널이나 미로처럼 탈출한다고 한다. 믿을 수 없지만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사람 키만큼 쌓인 눈 옆에서 찍은 사진을 봤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강릉으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우리 지역은 뉴스에 폭설경보가 뜰 때도 그 정도로 눈이 오진 않았던 것 같다. 정말 500원짜리 동전만한 눈송이가 푹푹 떨어지는데 한치 앞을 나아갈 수 없었다. 그럼에도 거리엔 사람이 많았다. 보통 눈이 많이 오면 외출을 잘 하지 않는데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우산을 쓰고 거리를 배회한다. 강릉에 살던 친구는 많이 오는 게 아니라는데 아무래도 믿을 수 없다. 큰 눈송이가 밀도는 또 얼마나 높은지 내 시야엔 눈송이가 빈틈없이 꽉 차있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제설 작업이 너무 빨라서 도로엔 눈이 쌓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2월엔 눈이 얼마나 올지 상상할 수 없다. 강릉에서 1,2월을 맞이한다면 내가 생각하는 첫눈도 핀란드에 간 것처럼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어깨와 머리에 쌓이고 눈에 보이는 눈! 바로 사라지지 않고 눈에 보이는 눈! 진짜 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