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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록/짧은 이야기

<20180130> 한국에는 뾰족산이 없어

 

     

     내 친구는 그림을 꽤 잘 그렸다. 그 누구도 그 애에게 미술에 재능이 있다고 말한 적은 없지만 그 작품을 보면 잘했다고 했다. 그 중에서도 수채화를 참 잘 그렸다. 그 나이에 맞지 않는 감성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실력과 재능은 다른 것인 건지 아니면 그 재능을 인정하기 싫었던 건지 사람들은 그 결과에만 주목했다.

     

     한번은 친구가 산이 있는 풍경을 그렸다. 보통의 초등학생이 그렇듯 초록색 산과 꽃이 핀 들판이 있는 풍경. 구름이 있지만 태양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 밝음을 자랑하는 그런 풍경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높고 뾰족한 산을 그렸다. 우리 주변의 산은 한눈에 봐도 웬만한 아파트보다 훨씬 높고 거대한데 높게 그리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림은 좋은데 우리나라엔 뾰족한 산은 거의 없어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이 말한 한국엔 뾰족산이 없어란 말은 참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리가 아닌 미술을 하고 있었다. 사실 우리는 그 풍경의 실체를 본 적도 없다. 모든 것이 상상일 뿐이다. 나의 시선이 옳았을지 틀렸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자라왔다. 절대적 진리가 아닌 것을 옳다고 강요받으며. ‘여지라는 것을 볼 기회마저 박탈당하며. 끝이 보이질 않는 겨울, 친구의 따뜻한 그림이 생각나지만 더 이상 그 그림은 없다.